대온실수리보고서 / 김금희
2025-03-12조회 6
건물을 고치면서 부서진 자기 마음도 고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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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금희 작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를 통해 처음 만났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김승옥문학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한 작가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대표작 한 권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드디어 <대온실 수리 보고서>로 작가로서의 진면목을 증명하며 시대의 역작을 만들어 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진 소설로 재미와 감동 모두를 총량으로 담아내고 있다. 독자들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추천의 말에서 "소설의 구성이 박진감 있게 전개되어 단숨에 독파하게 되었다. 풍성한 서사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단 몇 페이지만 읽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작가의 최근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감동적이면서 거대한 서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서술되는 방식으로 소설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며, 인물들 간 주고받는 대화에서 알맞은 온도의 '곁'과 서로를 향한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면 소설은, 동양 최대의 유리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대온실 보수공사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 영두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진심을 알아채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어릴 적 원서동 낙원 하숙에 함께 살았던 문자 할머니, 영두와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인물 리사, 영두의 첫사랑 순신, 친구 은혜와 은혜의 딸 산아에 대한 묘사는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대온실 밑바닥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고자 계획 외의 일을 도모했던 동료들과 영두가 함께 보여준 품격 있는 태도에서 '직업의식'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는 명징한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영두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대온실 보수 과정을 설명하는 전개도 흥미롭지만, 일제 강점기에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역사의 실타래를 서서히 풀어가는 점 또한 이 소설의 특별한 재미이다. 혹시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기에 자칫 지루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독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작가가 세련되게 풀어낸 영두와 산아의 명쾌하면서 따뜻한 대화 덕분에 일순간에 종식되고, 독자들은 가슴 뻐근한 이야기가 담긴 '대온실' 안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김금희 작가의 문장들은 억지로 힘을 주지는 않고도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본값으로 하고 있기에, 가볍게 지나치려고 했던 문장들에서조차 독자들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감동을 느낀다. 작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고, 그 마음들을 그러모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모르겠으면 하면 되는 건가?" "나는 모르겠으면 그냥 하거든. 아까 인사한 선생님인 것 같은데 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으면 그냥 해. 자기 전에 양치를 했나 안 했나 헷갈릴 때도 그냥 하고." "그럼 나도 그냥 해야겠네."(20쪽) 이런 소설 속 한 구절은, 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이나 긴가 민가 헷갈리는 상황에서라면 '그냥 또 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어쩌면 별거 아닌 문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선택의 순간 매번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불확실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사는 게 친절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친절이 불이익이 되지만 친절 없음이 기본값이라고 여기면 불친절은 그냥 이득도 손실도 아닌 '0'으로 수렴된다(70쪽)는 대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소설 속 주인공이 완성하고자 했던 수리 보고서는 '건축물을 재건하는 과정이 담긴 글이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와 상처받은 인생의 한순간을 수리하고 재건하는 기록'이라고 평한 출판사 소개글이 충분히 공감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올곧고 따뜻한 이야기를 읽은 뒤 찾아온 변화 주인공이 과거의 건축물을 재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찢어지고 부서진 마음을 견고하고 단단하게 매만지게 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행간에서 충분히 읽혀 가슴 뻐근한 감동을 느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창경궁을 떠났던 영두는 시간이 흐른 뒤 배양실 자리에 국화밭이 조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안도하는데, 독자들 역시 흔들리는 소국을 상상하고 눈에 그리며 평온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념도 추모도 없는 이 상태가 가장 진실에 가까워 보였다. 무언가 들어서 있다면 오히려 그 긴 이야기를 지우는 듯했을 거였다.(396쪽)'라고 생각하는 영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기 때문이다. 김금희 작가는 '어쩌면 각자가 자기 인생에 하나쯤 품고 있을지 모를 이 "조그만 이야기"들을 당신들과 나누기 위해서 나는 지금까지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410쪽)'고 고백했다.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서사들이 위대한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이야기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반짝일 때 비로소 진짜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해 치밀한 인과관계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엮어낸 김금희 작가의 탁월함이 돋보인 소설이었다. 스치는 생각과 지나가는 시간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덧대고 색칠해,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살리는 묵직한 감동의 순간을 선사한 김금희 작가의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나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추억 속 풍경처럼 기억할 것 같다. 누군가를 거스르지 않는 올곧고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나서, 쪼그라들고 위축됐던 마음을 다시금 '벌크업', 즉 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음속에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유리온실을 안고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덮고 나서 깨지지 않는 단단하고 안온한 마음속 온실의 재건축을 시작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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