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조승리
2025-03-17조회 5
이 시각장애인이 지독한 하루를 축제로 만든 비법 내 심장에 강력한 ‘감동 펀치’,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책을 추천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독서가들로부터 책을 추천받는 것도 좋아한다. 읽다가 포기하고 덮는 일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 되곤 한다.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과거 <일하는 마음>을 쓴 제현주 작가의 SNS에 올라온 리뷰에서 처음 접했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일컬어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감동을 주는 책'이라고 극찬한 기사를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15세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 전맹이 된 '후천성 시각장애인' 조승리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다. 읽는 내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설움과 상처와 배제의 아픔 속에서 이토록 담담하면서 단단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게다가 삶의 고단함과 힘겨움 사이에서 피어나는 조승리표 유머는 울고 있던 독자들을 별안간 폭소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과연 이런 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는 감탄하면서 읽었다. 감탄하며 읽다가 꺽꺽 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비관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불행이 나한테 온 건가' 탓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조승리 작가는 시력을 잃기 시작한 순간부터 각종 문학에 탐닉하며 지적 자산을 쌓아갔다. 자신의 삶을 결코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작가는 누군가는 '지랄맞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삶을 한낮에 열린 빛나는 축제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에피소드 '자귀나무를 듣던 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와 딸이 나누는 대화를 읽으며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툼 끝에 집을 나간 딸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걱정과 연민과 애정이 섞인 모녀의 대화가 너무 공감되어서 나는 그만 꺼억 꺼억 소리 내 울어버렸다. "엄마가 다 잘못했다! 이 메시지 들으면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가 잘할게. 미안해 내 새끼!" 엄마가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눈물을 꾹 참고 인기척을 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지? 앞으로 나한테 잘해!" 눈물로 젖은 엄마의 얼굴이 나를 바라봤다. 전화기를 내려 놓더니 벌떡 일어나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악귀처럼 달려들어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마구 후려갈겼다. "뒈지지 뭣 하러 기어 들어왔어! 이 나쁜 년, 때려죽일 년!" 엄마는 나를 와락 껴안고 한참을 울어댔다. 그러다가 다시 분한지 내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갈겼고 또다시 끌어안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꼴이 우스워 울다 웃어버렸다. (23쪽) 책 초반부터 독자들의 심장에 강력한 감동 펀치를 날리는 조승리 작가의 필력을 접하며, 범상치 않은 작가임을 감지했다. 이병률 시인이 추천사에서 조승리 작가의 글은 '훤칠한 글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가는 전맹이 된 이후 먹고살기 위해 '마사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일하는 틈틈이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공고히 해간다. 장애로 인해 불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작가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고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이자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37쪽)'이 되기도 한다. 또한 보편적으로 장애인들은 할 수 없을 거라 여겨지는 일들을 보란 듯이 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끼리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든지 탱고 수업에 참여하는 일 등이다. 해외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 할머니들은 시각장애인 여행객들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라고.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행복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고 폄하하는, 매우 무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읽는 나조차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심장이 아플 정도의 아름다움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50쪽) 작가 역시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을 당시,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 삼아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포기했었다고 한다. 처음엔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삶의 순간순간 용기를 낸다는 작가. 그런 그가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작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자 행복을 발견해 내는 돌파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읽으며 그녀의 도전과 열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받은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의 첫 번째 단행본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가 출간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오랜 시간 점자 키보드를 더듬어 가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감동이 일었다. 심장이 아파왔다. 슬픔만이 심장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도 심장의 통증을 느낀다(226쪽). 조승리 작가는 정제되고 단아한 문체로, 유쾌하고 통쾌한 어조로 독자들의 심장을 두드린 아름다운 사람이다. 조승리 작가는 앞으로도 자신의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자주 잊어버리고, 빨리 체념하면서 당당히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보듬어 가면서 누구보다 안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