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한강
2024-11-01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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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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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책을 덮었다...겨우 완독한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심사위원들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한 이유이다. <소년이 온다>는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며, 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펼치기 어려운 소재임은 분명하다. 필자도 두 번째 시도 만에 겨우 완독했다. 읽다가 여러 번 책을 덮었다. 그 시간, 그 현장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도 읽기는 했지만, 노벨상 수상 이후에 만난 <소년이 온다>는 그때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런 문장을 쓰는 작가이니까 노벨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한 자 한 자 더 공들여 읽었고, 구성의 치밀함을 발견하면서 읽었고, 리얼리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듣고 만나고 체험했을지 짐작하면서 읽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쪽)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 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117쪽)
소설의 핵심 축은 동호라는 소년의 시선이다. 5월의 그날, 문간채에 누나와 함께 세 들어 살던 친구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도청으로 친구를 찾아 나선다.
도청 상무관에는 적십자 병원에서 온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줄지어 누워 있다. 시신을 덮은 하얀 천을 하나씩 걷어내며 정대를 찾는다. 찢기고 터지고 부서진 시신들 사이 어디에도 정대는 없다. 친구를 찾으러 왔던 동호는 천을 자르고 신원 확인을 도와주고 시신을 수습하던 형 누나들을 돕느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동호를 데리러 온 엄마와 작은형이 말했다.
"여기 있다간 다 죽어. 집으로 가자."
"걱정 마요. 며칠만 일 거들다 들어갈게요. 정대 찾아서."
그러나 동호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엄마는 말한다.
"가끔은 말이다.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생각한다이. 그까짓 세 몇 푼 받겄다고...정대가 이 집으로 안 들어왔으면 동호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그라다가...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면 큰 죄를 받제"(187쪽)
시간이 흘러 스물일곱, 서른두 살이 된 큰형과 작은형은 명절 때나 아버지 제사 때마다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운다.
"그 조그만 것 손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 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었담서 네가 어떻게!"
가족들의 이 대화 속에서, 생의 순간순간마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이 느껴져서 연신 가슴을 부여잡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원망하지 않고서는 숨을 쉬며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원망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음의 지옥에서 결코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이런 마음들이 부유하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기억은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되기도 한다.(134쪽)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한 가족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기억만으로도 누군가의 생이 서서히 가라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135쪽)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 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한다.(134쪽)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 있었고,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던 지휘관들이 있었다고 한다.(206쪽)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고, 집단 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고,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고도 한다.(212쪽)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 걸까?
5.18은 매년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고통이고 여전히 쓰이고 있는 역사일 것이다. 먹먹함에 끝까지 읽기를 포기한 독자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필자는 이 소설에 대해 어떤 평가도 판단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소설과 사건에 대한 사유는, 깨달음은, 평가는 독자들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