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 청예
2024-10-02조회 77
-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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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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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산뜻한 색감의 표지와 얇은 두께에
살짝 방심했던 것 같아요.
제가 나름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스토리의 소설은 본 적이 없어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소재의 소설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때문에 소설의 말미에서는
그저 할말을 잃었더랬어요.
소설은 27세 유치원 교사인 오영아라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잘 웃고 남을 잘 배려하는 성격의 오영아는
담당하고 있는 반의 원아인 은우(마일로)의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심각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오영아는 주변과의 갈등을 피하려
억지로 웃고, 미안하지 않아도 사과하고
억지로 취미와 습관도 바꾸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은우의 엄마가 추천해준 상담센터에서
뇌에 실험용 시술(정서 조절 시술)을 받게 되는데...
그 시술의 효과는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술 후 오영아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됩니다.
시술의 여파로 통제력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스프링처럼 눌려 있던 욕망, 자기 합리화, 분노, 억울이
폭발적으로 튀어 오릅니다.
그녀는 파괴적인 충동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내놓지 못했던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냅니다.
오영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하고
본인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환희와 쾌감과 자유를 느낍니다.
그 시술의 효과는 딱 한달!
오영아는 평생 맛보지 못했던 쾌락을 느끼지만
계속 유지하고 싶은건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혼란스러워합니다.
끔찍했다. 맛본 기쁨을 평생 그리워만 하면서 살 거라니.
침이 쏟아져 나올 만큼 쾌락을 선사한 배덕의 맛을
잊을 수 있을리 없었다.
나는 그 상태를 다시 경험하길 갈망할 것이다.
과거의 나는 선한 남자를 억지로 사랑하고,
환경을 끔찍이 아끼고, 두려운 짐승에게도 손을 내밀고,
불편한 친구를 곁에 두고, 아동을 사랑하는 체하는 여자였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일탈을 시도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때의 나는 부서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각상에 붙어
조화를 완성하려했던 하나의 팔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라는 존재는
곧 사회이고, 곧 전체였다.
(162쪽)
우리는 수십개 혹은 수백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얼굴을 바꿉니다.
그것은 가식적이라는 말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선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마땅하게 그래야 하는
상황들이 있으니까요.
나의 진짜 모습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하죠.
그러나 때로는 '체'라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시원하게
질러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저 역시 오영아가 해방감을 느꼈던 것처럼 딱 한번만이라도
내 안의 경계를 허물고 마구 욕을 해대고 싶을때가
가끔 있기는 합니다.
아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적군이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리기는 해야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겐,
오렌지를 썰수는 없지만 꿈틀~하고 반응은 할 수 있는
빵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평소에는 잘 감추고 있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푹~!! 할 수 있는~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흔적은 남길 수 있는~
그런 빵칼이요.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실지 궁금해요.
서점에 깔리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일주일에 1쇄씩 찍어낸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소설이니까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