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 에르난 디아스
2024-08-29조회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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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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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먼 곳에서는』 2023년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국내 독자에게도 커다란 사랑을 받은
『트러스트』의 작가 에르난 디아스의 데뷔작입니다.
201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고,
첫 작품으로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작가의 두번째 책 『트러스트』는
퓰리처상과 커커스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트러스트>는 부커상 후보에 올랐고
서른개가 넘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먼 곳에서는』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지게 된
이방인 호칸의 평생에 걸친 여정과 깊은 고독을
고통스러울 만큼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다 싶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엄청난 몰입감을 이끌어 내고
호칸이라는 인물에 하염없이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소설을 읽는 내내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호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가 겪는 극단적인 상황들이 안타까워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형을 찾아 뉴욕으로 가겠다는 목적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그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된 호칸의 삶이 비통하게 느껴졌어요.
작가가 묘사하는 문장들에는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쓸쓸하면서 황홀하고, 적막하면서 광활한
마법같은 힘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만에 꼭 소장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를 느낀 책이에요.
삶이란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과의 투쟁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삶이란 모든 식물과 동물을 흙과 먼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상승하는 힘이라고.
(111쪽)
"삶이란 중력과의 투쟁이면서 상승하는 힘"이라는 표현에
가슴이 쿵! 했어요. '아, 이거다' 싶었거든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를 밀어내고 끌어내려는 강력한 중력들에 맞서 싸우게 되잖아요.
중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고랑을 파 신발을 구겨 넣어서라도
어떻게든 버텨내고 지탱하려 안간힘 쓰는게 삶일텐데,
그 시간들을 견뎌내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칸은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삼키는 공허함에 압도되었다.
부식성 그림자가 진행중인 세상을 지워버렸다.
평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고요함,
완전한 황폐함을 욕망하는 왕성한 침묵,
모든 것을 식민화하는 전염성 강한 허무.
그 소리 없고 황량한 자취 속에 남겨진 것이라곤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진동뿐이었다.
(190쪽)
위 문장을 읽으면서 호칸의 삶의 여정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는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소년 호칸이 전설적인 인물이 되기까지의
고통스럽고 고독했던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가 본 사람이라면
위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호칸이 느꼈음직한 감정을
너무나 명징하게 표현한 문장이거든요.
작가 에르난 디아스는 진짜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 속에서 호칸은 계속 걷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걷다가 발이 커져 신발이 터지고
몸집이 커지면서 옷이 작아지지만
기워입으면서도 계속 걷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드려볼께요.
쉬지 않고 걷는다는건 지속적인 기적의 반복일진데
모든 걸음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작가는 답합니다.
'모든 걸음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발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라고.
발을 내려놓기 직전에 가장 큰 두려움이 엄습하겠죠
얼마나 딱딱할지, 얼마나 부드러울지.
얼마나 따뜻할지, 얼마나 차가울지
예측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두려움을 걷어내고 과감하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우리 삶 속에서 기적같은 순간과 조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