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 김이설
2024-05-30조회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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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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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는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의 족쇄에 발이 묶인 한 여성의
숨 막히고도 진저리나는 일상들이 펼쳐집니다.
때론 고통스럽고 참혹하기까지 한 삶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이러한 현실 직시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김이설 작가의 문체는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선명합니다.
독자를 장면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심연을 보여준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음처럼 되지 않는 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의 전공이,
마흔 살이라는 중압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조카들에게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나의 현실이,
내가 자처한 족쇄에 엉켜
탈출할 수도 없는 이 집이,
나에게는 육중한 관처럼 느껴졌다.
(42쪽)
'육중한 관'이라는 표현에서,
이혼한 동생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시인의 꿈을 접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한 채
하루하루 버티던 그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네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터널은 결국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하다고 말할 때마다
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78쪽)
결국엔 집을 뛰쳐나와
혼자만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그녀.
어쩌면 같은 자리에 서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기다려 주고 있던 한 사람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다시
빈 종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여전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존재할테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자신만의 색깔을 머금은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