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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신성아

2024-04-24조회 8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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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책으로부터
엄청난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장이 매우 수려하고, 생각이 확고하고,
열정이 가득한 책을 만났을 때
활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한 강한 울림이 있어요.
박웅현 작가는 이런 순간에 빗대어
'책은 도끼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책이 저에게는 그야말로 '도끼'와 같은 책이었습니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의 부제인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이 책에 무게감을 한층 더 실어줍니다.
작가가 조심스럽게 펼쳐 놓는 서사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앞으로 힘겨운 연대가 그려질 것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책은 '질병과 돌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재난처럼,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습니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던 저자는
딸의 간병을 위해 휴직했다가
결국에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딸의 전속 간병인이 됩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입지를 굳혀가는 순간,
재난은 바로 그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정비하고, 세차하고, 기름을 넣고 이제 막 출발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찾아와 제동이 걸립니다.
온 세상이 자신 하나를 골탕먹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보내는 구조신호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해요.
모든 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얻어내야 할 돌봄의 총량이 있어서
그간 일을 한다는 핑계로 도외시했던
돌봄의 채무를 일시불로 추심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아무도!
"윤이 간병은 누가 할거야?"
라고 묻지 않는지 궁금해 합니다.
돌봄은 엄마의 의무가 아니라 부모의 의무인데
! 엄마가 간병을 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 아빠는 돌봄에 치열해지지 않는지
숱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들은 아픈 아이를 돌보며 자책하고
남은 가족을 챙기며 자학했다.
국가가 복지로 책임졌어야 할 돌봄이 가족에게 전가되고,
모든 가족구성원이 함께 나눴어야 할 책임은
사랑이라 불리며 여자에게 전가된다.
그렇게 여자의 사랑은 이름을 잃고 주인을 살해한다.
그 과정이 너무 가혹할 때는 운명이라고도 한다.
(42)

먹고 싶은 마음, 입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들어주는 마음,
아픈 사람이 바라는 대로 꼭 그렇게 해주는 마음을
이제 나는 너무 잘 안다.
혹시 다시는 해줄 기회가 없을까 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그 마음,
바로 돌보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이다.
(128)

상황이 어떻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받을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아픈 자신을 돌보느라 힘겨워하는 엄마를 보며
미안해하고 울먹이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 수시로 무너졌을거에요.
아픈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할지
자세히 알려주는 육아서는 어디에도 없었기에
엄마는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을거에요.

윤이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는 일을
'모성'이 아니라 '의리'라고 이름붙이고,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내려놓은채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
너무 가슴 아프고 공감이 되어서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힘겨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확신에 찬 어조로 아이의 투병기를 써 내려간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단하고 밀도 있는 문체와 어조에 압도당한 책입니다.
 
작가의 첫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과 지성이 넘치는 불꽃같은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요.